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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네 탓‘과 환대공동체의 꿈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6

                                                       ’네 탓과 환대공동체의 꿈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우리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과 사람()은 사람끼리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서로 상관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상관없다고 하는 언행으로 아수라장이다.

2021815일 광복절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까지 출격하여 경례를 받는 등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봉환되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겠단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며 홍범도 장군의 생전 공산당 가입을 이유로 내치려(적대/敵對)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군의 정통성의 문제나 카자흐스탄과의 국제적 우호와 신뢰의 문제는 상관없다는 태도다.

또 대통령은 여당 연찬회에서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거 보십시오.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건 1+1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또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거듭하여) ’싸울 수밖에 없다‘(당위성)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싸움엔 적이 있다. 대통령의 적은 누구인가?

그뿐인가. 우리는 근래 몇몇 사건 사고를 통해서 적대의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행안부 장관은 상관없다. 오송 지하도 사고에 지사나 시장은 상관없다. 근로자의 근로 중 사망에 대해 사주는 상관없다. 교사들의 자살, 폭행 사고에 교장 교감 교육감 교육부 장관은 상관없다.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파행으로 끝났어도 책임자들은 상관없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해도 정부는 상관없다 등등 상관없다가 난무하고 있다. 적대감이 난무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만날 때 상관있으면 상관있다고 하고, 상관없으면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관있다는 말은 서로 특정한 관계가 있다, 상관없다는 말은 아무 관련이나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상관있음이 명백한데 상관없다는 자세나 태도를 보이면 큰 문제다. 상대에게 배신감, 모멸감, 적대감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나를 지키고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던 부모나 형제, 친구가 절박한 상황에서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면 어떻겠는가. 너나없이 그 배신에 대하여 모멸감을 느끼며 적대감에 몸서리칠 것이다. 상관의 사회에서 상관있는 자가 상관없다고 발뺌하고 뒷짐 지고 먼 산 보고 있으면 천불이 날 일이다.

정녕 상관있는 이가 내 탓이오하고 상관있음을 고백하고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이건 당연한 일이고 양심과 도덕의 문제이다. 그것이 정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아가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상관없는데도 내 탓이오하고 상관있음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상관없는 대상을 향하여 도덕적 책무감을 느끼며 상관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야말로 상관없는 이웃을 환대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그물망으로 교직되어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환대가 절실한 때다.

적대(敵對)는 상대를 적으로 대하다는 뜻이다. 환대(歡待)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대받고 싶어 한다. 환대에 대한 소망은 인지상정이다. 오늘 우리는 이 소망을 꿈꾼다. 죄인, 소외된 자, 병든 자, 낙심한 자, 세리와 창녀들을 아무 상관없는 예수가 환대해 줌으로 이루어낸 세상이 이른바 환대공동체다.

특히 사회의 책임자나 지도자들이 상관있는 일에 나서서 내 탓이오”, “내 책임이오하면 환대공동체의 시작이다. 그리고 너나없이 우분투( Ubuntu)-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다른 모든 사람이 슬픈데 어떻게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하며 서로 기대고 의지하게 된다면 환대공동체의 끝이다. ”백 사람을 먹일 수 없다면 한 사람이라도 먹이세요.“ 하며 아무 상관없는 가난한 이웃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선행을 실천하여 환대공동체를 이루는데 헌신한 테레사 수녀가 꾼 꿈이 그것이 아닐까.

개인이나 사회나 나와 상관없다며 네 탓하는 사람들에게 군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소인은 남에게 책임을 묻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공자의 말을 간곡하게 들려주고 싶다. 이선관의 시 <없다>가 아프게 읽힌다. “번개시장에는 번개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 없고 /국화빵에는 국화 없고 /정치판에는 정치 없네

여기에 탄식의 마음으로 세상엔 네 탓만 있네한 구절을 보태면서 환대공동체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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