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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을 그리며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5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을 그리며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어떻게 살까’,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할 때 <팔러 가는 당나귀>라는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으로 가는 중이다. 어린 아들은 고삐를 쥐고 앞에서, 늙은 아버지는 뒤에서 따라간다. 이를 본 우물가의 아낙네들이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저것 좀 봐! 타고 가면 편할 텐데 그냥 걸어가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네."

이 말을 들은 늙은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당나귀 등에 태우고 가게 된다.

조금 가자 나무 밑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노인들이 이를 보고 소리친다.

"저런 불효막심한 놈이 있나! 늙은 아비는 걷고 팔팔한 아들놈은 타고 가다니!"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내려오게 하고, 자기가 올라탔다.

또 한참을 길을 가는데 애기 업은 부인이 비웃으며 말한다.

"늙은이가 저렇게 인정머리가 없다니? 어린 것은 걷고 자기만 편하게 가다니, 아들을 앞에 태우면 될 걸."

이 말을 듣자 아버지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길을 가게 된다. 이내 당나귀가 몹시 힘들어하며 헐떡거린다. 이 모습을 지나가던 농부들이 보고 혀를 차며 말한다.

"쯧쯧!. 조그만 당나귀에 두 사람이 타고 가다니,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너무 하지 않소? 그 불쌍한 당나귀를 두 사람이 메고 가면 어떻겠소?"

이 말을 듣자 아버지 역시 당나귀가 불쌍해져서 줄로 당나귀 발을 묶어 아들과 함께 장대에 메고 갔다. 이렇게 길을 가다 다리를 건널 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손가락질하며 낄낄대는 바람에 당나귀가 놀라 발버둥을 쳤고, 장대가 부러져 당나귀가 물속으로 떨어져 떠내려갔다. 아버지와 아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미 당나귀는 물결 따라 떠내려가 버렸다.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팔려는 애초의 의도는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애꿎은 당나귀만 죽게 만들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을 이루자는 애초의 의도는 사라져버리고 애꿎은 공정과 상식은 어느새 죽어버린 듯하다.

광주 5.18이 일어난 지 40년이 지났어도,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도, 일하러 출근했다가 영원히 귀가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날로 쌓여가도, 이태원에서 참사가 난 지 1년이 되어도 기대했던 공정과 상식은 물결 따라 떠내려가 버리고 이젠 불공정과 몰상식만 판을 치는 가운데 각자도생에 골몰하여 한 치 앞을 못 보는 상황이 그렇다.

아낙네들의 손가락질, 노인네들의 야단치기, 애기 업은 여인의 비웃음, 농부들의 혀 차기,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은 각각 자기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이다. 이렇게 하나같이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삿대질하고 비웃고 야단치고 큰소리로 꾸짖는 광경이 가히 아수라장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팔러 간 당나귀를 잃게 그것도 죽게 만들고 만다. 아버지와 아들 즉 남들의 상황이나 처지에 상관없이 각자의 동굴의 우상에 사로잡힌 채 쉽게 말하고 행동하여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의 주견 없음도 한몫을 거들고 있음은 논외로 치자.

아버지와 아들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그들에 대한 배려나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이에 대해 공자님은 단 한 마디로 해법을 제시한다. ()!

()은 공자의 중심 사상으로 사람들끼리 친(사랑)함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여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친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로 각 사람을 그 상황과 처지에 맞게 사람으로 예우(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공자님의 관심은 나 아닌 너, 다른 사람에게 있다. 인간의 본성이요, 인간이 실천해야 할 바른 도리인 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논어 선진편에 보면 공자님이 제자들 넷을 모아 놓고 너희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증점이라는 제자가 대답한다. "늦은 봄날, 봄옷을 갖춰 입고 관()을 쓴 벗(청년) 대여섯, 아이들 육칠 명과 같이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고 싶습니다"고 하자 공자는 "나도 증점과 같다고 감탄했다." 군웅이 할거하던 어지러운 세상에서 공자가 바라던 삶은 친구들, 아이들과 함께 목욕하고 바람 쐬며 노래하는 소박한 일상이었음을 본다.

그렇다. 소박한 일상을 함께 하는 이웃들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공동체,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며 아끼고 사랑하는 대동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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