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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불효자는 웁니다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5

불효자는 웁니다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에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많은 사람들이 알고 부르는 불효자는 웁니다노랫말이다. 반야월이라는 예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있는 것은 논외로 치자. 다른 예명인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녹음할 당시 아들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어머니의 상을 당한 슬픔까지 배어있는 노래란다.

모든 자녀들은 어버이 앞에 원천적으로 불효자다. 아무리 해도 자식들의 효성으로는 어버이의 사랑을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뒷바라지하신 고향(시골)에 계신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들의 경우는 더욱 각별하다. 어버이, 고향산천은 한 맥락에 있는 동심체이다, 그러기에 명절이 되면 기를 쓰고 가서 만나야 하는 한몸공동체다. 그때를 놓치면 자식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원천적으로 효도가 부족한데 찾아뵙지 못하는 것은 불효자임을 확연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 추석엔 전국의 거리에서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거리 두기를 환기할 뿐만 아니라 재미와 흥미까지 느끼게 하니 재치가 훌륭하지만 어쩐지 허전하고 씁쓸하다. 어버이가 계시는 곳, 고향산천이 있는 곳, 그리움의 태자리로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곳,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밥처럼 물처럼 맨날 먹어도, 맨날 보아도 물리지 않는 곳. 그 고향공동체. 그곳에 가면 불효자라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라서 목놓아 우는 불효자는 어디 가고, 이제는 갈 수 있어도 가면 안 된단다. 고향마을(공동체)에 가면(오면) 불효자란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시의 삭막하고 건조한 생활을 근근히 견뎌오다가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이란 곳을 찾아가 넉넉하고 풍성한 감정과 감성의 충전을 고대하였으나 어이없이 포기해야만 하다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효자는 옵니다며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효자는 못 되어도 불효자는 안 되려는 갸륵한 마음(?)에 어처구니없이 주저앉아 류근 시인의 아들딸을 향한 유언의 시를 읽어 본다.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중략) / 빼앗기지 말아라 /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 비겁해서 행복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중략) /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중략) / 패배자들을 경멸하고 혐오해라 / 너에게 기회와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 잘 보여라.(중략)/앞에서 못 이기면 뒤에서 찔러라/지지 말아라 / 이기고 짓밟고 넘어서고 보아라.(중략) / 무슨 수를 써서든 비싼 밥 먹고 비씬 잠 자라 /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라.(중략) /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 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중략) /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 ‘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류근 유언’- 아들, 딸에게)

산업사회, 도시사회, 자본사회가 크고 많고 빠르고 높은 것을 추구하다보니 남는 것은 피로요 불안과 두려움, 소외와 배제로 인한 우울뿐이다. 그런데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나 하나만 잘살면 된다는 마음을 독하게 품지 않으면 도무지 살길이 없어 보이는 시대를 살아가는 일은 참 슬프고 아프고 가혹하다.

고향, 추석, 부모님, 가족 등은 말뿌리가 다르고 생김이나 뜻도 다르지만 같은 범주 안에 있다. 그 지향하는 바가 작고, 적고, 느리고 낮아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효자는 그냥 울지만 효자는 속으로 꺼이꺼이 운다. 부모가 계신 고향이, 추석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더 잘 효도하지 못해서 속 깊은 울음을 울게 되는 것이다.

불효자는 추석에만 오지만 효자는 평소에 온다. 몸으로 올 수 없기에 전화로, 편지로, 마음으로 밤낮없이 문턱이 닳도록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울음 속에, 그 찾아옴 속에 우리의 고향이, 부모가, 가족이, 추석이 한몸공동체로 스며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불효자는 오늘도 울고 있다.(광주매일신문 2020.10.19.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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