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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마을, 퀘렌시아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6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마을, 퀘렌시아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퀘렌시아(Querencia).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스페인 투우장. 붉은 천을 흔드는 투우사와 극도의 공포로 흥분한 투우가 미친 듯이 돌진하는 장면. 피범벅이 된 채 싸우던 소가 문득 싸움을 멈추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싸움에 지친 소만 아는 곳이다. 그곳에서 소는 숨을 고르고 기운을 모아 다시 싸울 힘을 회복한다. 그 소만 아는 안심, 안전한 공간을 퀘렌시아라고 한다.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난리요, 야단이다. 지난 8월 초 방학과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위협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수칙들을 내놓았다. 안전한 여름 방학·휴가 보내기 33이 그것이다.

3행은 첫째 마스크를 꼭 착용한다’. 둘째 손을 자주 씻는다또는 휴게소·식당·카페 등에 최소 시간만 머무른다’. 셋째 사람 사이 거리는 2m(최소 1m) 이상 유지한다이다. 3금은 첫째 발열·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둘째 밀폐·밀집·밀접 등 3밀 장소는 방문하지 않는다’. 셋째 씻지 않은 손으로 눈··입을 만지지 않는다또는 침방울이 튀는 행위(소리 지르기 등)와 신체접촉(악수, 포옹 등)을 자제한다등이다.

이 수칙들을 잘 지키는 것이 당장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사람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해야 한다는 절규 같은 언어가 우리를 더 긴장하게 한다. 심지어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흩어지는 것이 연대라는 모순된 언어가 공감을 얻고 있고,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오늘일 것입니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브리핑은 진정 어린 호소임을 알면서도 협박 같아 섬뜩하다.

그렇다. 세상()은 위험하다, 사람들이 만나면, 모이면 위험하다. 세상은 붉은 천을 들고 유혹하는 투우사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겁도 없이 투우사를 좇다 보면 지치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욕망의 전차를 타고 정신없이 가다 보면 기진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생명에 경각에 달렸을 때라야 소는 살 궁리를 하고 '퀘렌시아(Querencia)'를 찾는다.

우리는 지금 긴 코로나19, 장마와 폭우, 폭염 등으로 너무 지쳤다. 뿐만 아니라 매출 급감, 실업, 폐업, 휴업 등으로 이곳저곳에서 죽겠다는 아우성이 메아리친다. 이 아우성은 3, 3, 3밀과 맞닿아 있다. 3밀은 밀폐·밀집·밀접 장소를 피한다이다. 곧 퀘렌시아를 찾으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집과 내 학교를 우리집, 우리학교라 부른다. 우리아빠, 우리엄마를 울아빠, 울엄마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어원이 (울타리)’로서 자신이 속하고 있는 범위를 뜻한다. 닭 우리처럼 새나 동물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만든 둥우리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울타리 안에 모여 사는 모두에게는 포근하고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투우장 같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자본의 싸움터에서 소위 영끌하며 죽을 힘을 쓰고 있다. 몸과 마음 영혼까지 피폐해진 오늘의 우리들에게 코로나와 장마와 태풍과 폭염은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사면초가이다.

지금 당장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퀘렌시아(Querencia)'를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억지로라도 손 씻고 조용히 집에 머무르라는 자연의 경고이자 처방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집이, 우리학교가, 우리마을이 바로 그 퀘렌시아(Querencia)'가 되어야 한다. 휘황찬란한 네온이 반짝이며 손짓하는 세상은 한낱 투우장일 뿐이다. 각자의 집과 마을과 학교가 숨을 고르고 기운을 회복할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투우장 내에 있는 투우의 안식처를 사람들은 어디인지 잘 모른다. 오로지 인간과 싸우는 해당 소만 안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대목이고 경이롭다. 일상에 지친 우리 모두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헤밍웨이는 투우장에 수백 번이나 드나들면서 투우를 관찰한 결과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해져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 투우장의 경기가 치열해질수록 더욱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마을이 퀘렌시아가 되어야 함이 절실해진다. 물론 우리집이, 우리학교가, 우리마을이 돌봄과 가사노동, 폭력과 학대, 소외와 배제, 혐오라는 또 다른 투우장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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