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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기억이 생명이다 – 낭독공연 <양림>을 보고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40

                                                       기억이 생명이다 낭독공연 <양림>을 보고

이계양(문학박사.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지난 830일 광주시립극단 제1회 창작희곡공모당선작인 <양림>의 낭독공연을 관람하였다. 익숙하지 않은 낭독공연이었지만 신선하고 전달력이 좋아 관객들을 몰입하도록 하였다. 거기에 배우들의 실감 나는 낭독은 한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은 채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양림은 버드나무가 우거진 언덕으로 선교사들이 기독교의 씨앗을 심고 가꾸었던 곳이다.

양림골에서 쓰러진 나환자를 도와 업고 가는 포사이드 선교사를 본 최흥종의 회심과 기억과 다짐,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를 모토로 삼고 양아들인 요셉에게 양림이 있어서 네가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있어서 양림이 있는 거야. 기억하렴고 유언을 남기는 서서평 선교사의 섬김의 기억과 다짐들.

서서평 선교사의 유지를 기억하며 양림에서 고아들을 거두고 돌보며 섬김을 삶을 실천한 박순이 원장. 여순사건의 현장에서 죽은 어미에게 매달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너는 엄마를 잃고, 나는 남편을 잃고.……. 우리는 다 버려졌구나하면서도 끝내는 죽은 요셉의 인형을 안고서 돌아온다고 약속했어요. 이곳에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누군가 나팔을 불 때, 그때 요셉이는 양림으로 돌아올 거에요. 꼭 돌아올 거에요.” 하며 울부짖는 박순이 원장의 기억과 다짐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폐교를 선언하면서 수피아의 역사는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울지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고 했던 수피아 유화례 교장 선생님의 기억과 다짐들.

이 기억과 다짐들이 모이고 쌓여 버드나무 우거진 생명 있는 오늘의 양림을 있게 하였다.

특히 6.25 전쟁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북한군을 피해 피난길에 나서는 순이에게 꼭 살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해 줘! 기억이 있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아! 기억은 생명이야! 어서 가!“라고 웅변하듯 외치는 양림에 남을 요셉의 대사를 듣는 순간 가슴에 섬광이 스친다.

기억하기조차 참혹한 2014416. 누구랄 것 없이(물론 이를 폄훼하며 조롱하는 사람 같지 않은 자들도 있긴 하지만) 그날 이후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노란 리본과 함께 304명의 생명을 기억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고 다짐 또 다짐했건만 아직 참사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따라서 원인이나 책임자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7년여의 세월만 흘렀다. 그사이에 다짐들은 누렇게 변색된 채 내 가슴 속에서 흔적조차 흐릿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희미해진 기억들의 틈새로 304명의 생명들이 되살아오면서 양림의 역사로 스며들게 된다.

어디 세월호 당시의 기억과 다짐들뿐인가. 이 땅에 이름도 빛도 없이 시나브로 사라진 무수한 노약자, 성소수자, 소외자, 병든 자, 노동자, 실업자, 청년 등등. 문제가 발생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기억과 다짐을 되새기며 웅성거리다가 이내 내 발등에 불 끄느라 급급한 우리들의 파리 목숨 같은 인생살이가 구차하기만 하다. 내 기억이 생명인데. 촛불을 들고 혁명적인 변화와 개혁을 한 목소리로 다짐했건만 촛불 정부의 기억과 다짐도 미생들의 다짐과 기억에 다를 바 없이 초라한 것을 보며 자괴감마저 느끼게 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궁리)에서 기억의 핵심은 재현이다’, ‘생명의 핵심 또한 재현이다고 말하면서 생명체는 기억을 통해 본연의 삶을 획득하고, 살아있는 한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반대로 생명체의 죽음은 기억의 끝이며 재현의 정지다. 최초의 심장박동이 더 이상 재현되지 않을 때,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상태가 죽음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죽음 이후에도 기억을 매개로 생명은 이어진다고 말하듯 기억이야말로 생명 자체다.

우리가 사람이라! 나가 사람인 것을 처음 알았구먼, 저이가 사람이라 해 주니께 사람이 되아부렀소. 우리도 인자 사람이 되았응께, 사람으로 살아보드라고! .... 아이고 사람 노릇하기도 힘드네.“

<양림>의 마지막에 나환자들이 주고받는 이 말들은 사람이라고 이름 불러 준 것을 기억하고 인식할 때 사람으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의 생명값을 하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 기억이 생명이다. <양림> 낭독공연을 통해 기억이 생명으로 승화한 것이 사람이요 역사요 문화임을 새삼 깨달으며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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