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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상식 밖의 공동체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9

                                                               상식 밖의 공동체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공정이 화두다. 특히 85년생, 1야당 대표가 공정의 화두를 들고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재점화되었다. 공정에 대하여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게 절차는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여 불을 붙인 바 있다.

현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판을 치는 시대이다.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과 극단의 효율을 중시하며 그 정도가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경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하면서 결국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는다. 효율 역시 생존과 도태로 분리, 격리하는 것으로 귀결한다. 그 경쟁과 효율 사이에 공정이 설 틈새가 있겠는가. 원천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경쟁엔 공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있다면 승자편의 공정일 뿐이고, 그것을 능력이라 이름하여 옹호한다면 적자생존을 자인하며 신화화하는 일이다. 시험, 특히 대학입시와 취업이 경쟁의 전쟁터가 되어 수많은 청소년 젊은이들이 실의, 좌절, 적대감, 절망, 포기, 죽음의 위험 앞에 서성거리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토끼와 거북의 경주를 소환해 보자. 잘 알고 있듯 달리기로는 선수급인 토끼와 느림보 별명을 가진 토끼가 경주(경쟁)를 한다는 게 공정한가? 그런데 경주는 진행이 되었다. 출발선도 그 결과도 공정하게. 낮잠을 잔 토끼의 패배, 경주 중 잠자는 토끼를 살그머니(?) 지나친 거북의 승리. 게으른 토끼의 패배와 부지런히 노력한 거북의 승리는 공정과 상식의 서사라 할 만하다. 적어도 형식적. 상식적으로 공정해 보인다. 그렇지만 개운치 않다. 패배한 토끼도, 승리한 거북이도 흔쾌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기엔 뭔가 부족하다.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常識)을 조문화한 것이 법이고, 이 법을 근간으로 하여 질서를 유지해가는 사회를 법치 사회라 한다. 현대는 법치 사회다. 그런데 법 곧 보편적 상식(常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인 상식 밖의 뭔가가 있고, 있어야 한다.

경쟁하여 이기는 것은 능력주의 사회의 상식이다. 마치 토끼와 거북의 경쟁에서 거북은 성실과 끈기를 능력 삼아 승리한 것처럼. 이 승리는 토끼와 거북의 경주(경쟁)가 시작은 같이 했으나 끝은 승자와 패자로 갈라서게 하였다. 그것도 찜찜하게. 둘은 공동체 안에서 더 이상 함께 살아가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왔다.

피할 수 없는 경쟁의 현대사회 속에서 우린 속절없이 서로를 분리, 배제하며 외로움의 나락으로 추락해 가는 것을 눈뜨고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경쟁 속에서도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보편적 상식인 법이라는 형식을 따르는 한 경쟁의 공정성은 자칫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해체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쉽다. 오히려 상식 밖의 방법을 통해 공동체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낮잠 자는 토끼를 추월하려는 순간 거북이가 토끼에게 손을 내밀어 흔들어 깨웠다면? 잠에서 깨어난 토끼가 혼자 이기기 위해 앞질러 달려갈 수 있었을까?(하긴 많은 현대인들은 염치 무릅쓰고 혼자 달려가 승리했을지도 모르겠다) 거북의 상식 밖의 행동은 오히려 승패를 떠나(넘어) 둘을 통합하고 융합하여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상식 밖의 모습들을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젓가락질을 멈추는 모습, 목발 짚고 가는 장애인을 차마 앞지르지 못하고 걸음을 늦추는 모습, 어린애를 앞세우고 느리게 달려주는 어른들의 모습, 춤에 서툰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막춤을 흉내 내는 춤꾼의 모습, 연약한 사람을 생각하며 힘없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씨름꾼의 모습, 어려운 이웃을 살피느라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부자의 모습, 지적 우월감 대신 소소한 농담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학자의 모습, 바쁜 발걸음 멈추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하여 길 안내를 자청하는 젊은이의 모습, 쉽고 편한 길 대신 힘들고 어려운 길을 일부러 찾아 수고하는 봉사자들의 모습 등등

이 상식 밖의 모습들은 상대방(다른 사람)의 약점, 결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일체를 배격한다. 오히려 연민이 이해와 공감, 배려와 사랑으로 경쟁을 승화하게 한다. 또 상식 밖의 모습들은 이기려고 경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성 여부를 따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름하게 한다. 공동체의 공정은 상식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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