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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좌갈우등(左葛右藤)의 찰떡궁합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7

                                                              좌갈우등(左葛右藤)의 찰떡궁합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이상 기온으로 매년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고 금당산 자락의 우리 학교(광주푸른꿈창작학교)엔 이미 대부분의 꽃이 지고 5월의 녹음빛이 짙어 가고 있다.

우리학교 운동장 옆 언덕 위엔 등나무 2그루가 있다. 곁에 지지대를 세워 등나무가 타고 올라가 지붕을 이루고 그 그늘 아래 벤치를 놓아 해가림 속에서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지난 4월에 연보라색 등꽃이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만개하더니 지금은 꽃과 향기 대신 진한 녹색의 지붕을 이루었다. 등나무 아래서 등나무의 전설을 떠올려 본다.

경주시 오류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89호 등나무는 4그루가 있는데, 2그루씩 모여서 자라고 있다. 오류리 마을 입구 작은 개천가에 있는데, 옆에 있는 팽나무와 얽혀 마치 팽나무를 얼싸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등나무가 있는 이곳은 신라의 임금이 신하와 더불어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 용림(龍林)이라고 불렀는데, 이 용림에 있는 등나무라 해서 용등(龍藤) 또는 굵은 줄기가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용처럼 보여 용등이라고도 했단다.

신라 어느 때인가 이 마을에 살던 한 농부에게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다. 옆집에는 씩씩한 청년이 살았는데, 이들은 각각 마음속으로 옆집의 청년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매는 한 남자를 같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정하고 착한 자매였기에 서로 양보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청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매는 서로 얼싸안고 슬피 울다 이내 연못에 몸을 던졌다. 그 후 연못가에서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났다. 그런데 죽었다던 옆집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자신 때문에 죽은 자매의 이야기를 들은 청년도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졌는데, 그 자리에서는 팽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등나무는 이 팽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가고 있어, 살아 있을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 이룬 것이라 전해져 온다.

그래서인가, 등나무꽃의 꽃말은 '환영', '사랑에 취하다'라고 한다. 등나무꽃이 이 학교에서 처음 봄을 맞는 나를 환영하는 꽃인가 여기니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사랑에 취하다'는 등나무 잎을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시들거나 잃어버렸던 애정을 회복하여 금슬을 좋게 하는 효험이 있기 때문에 얻은 꽃말이렷다. 또 등나무꽃을 말려 신혼부부의 이불 속에 넣어두면 부부 애정이 두터워진다는 속설도 있으니, 광주푸른꿈창작학교와 부부 되어 사랑에 취해보고 싶다.

등나무 아래서 상념의 꼬리는 갈등(葛藤)으로 이어진다.

(·)은 덩굴식물로 다른 나무나 지지대를 왼쪽으로 감으면서 오르는 습성이 있다. 반면, 비슷한 덩굴식물인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좌갈우등) 두 식물이 만나면 얽히고설켜 쉽게 풀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의견충돌이나 어긋남이 일어나면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등나무가 손쉽게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아 타고 올라가 다른 나무의 생명을 보전하는 햇빛 즉 광합성 공간을 차지해 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등나무를 소인배에 빗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등나무 아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눈에 보이기로는 갈등유발자요 소인배 같지만 눈에 안 보이는 내면 즉 뿌리를 보면 전혀 다르다. 등나무는 콩과 식물이어서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뿌리혹박테리아에 공중질소를 고정하여 제공받고 양분을 건네주는 공생의 삶을 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또 칡도 뿌리에 좋은 성분이 많아 해독, 간 기능 개선 등 다양한 한약재로 이용되어 왔으며, 질긴 줄기를 엮어 다양한 생활 도구로도 이용해 왔다.

또 칡과 등나무는 생육지가 서로 달라 실제로는 얽혀서 갈등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의 갈등은 대부분 사람이나 사물의 한 면만 보는 까닭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 이면까지 살펴보면 이해나 공감으로 연결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칡과 등나무가 빚어내는 좌갈우등의 찰떡궁합은 협치의 아름다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이 단단한 협치를 무너뜨릴 것이며, 누가 눈에 안 보이는 땅속에서 조용히 공생의 도를 걸을 것인가.

광주푸른꿈창작학교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이웃 주민들이 어우러져 좌갈우등의 찰떡궁합이 되어 공생의 공동체를 이루어간다면 학교와 세상의 새로운 대안이 되리라.

무르익어 가는 봄날, 등나무 아래서 협치의 대안교육과 공동체의 공생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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