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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천 걸음에 엄습해 오는 푸른꿈들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6

                                                       천 걸음에 엄습해 오는 푸른꿈들

 

바야흐로 봄이다.

온갖 나무에 봄꽃이 피더니 이윽고 꽃 진 자리에 연둣빛 이파리가 신비한 자태를 드러낸다. 죽은 듯이 말라빠진 가지마다 제 나름의 모양과 빛깔을 가진 잎들이 돋아나는 신비.

그야말로 신비다.

무형의 자리에 유형의 사물이 등장하는 창조다.

봄은 그런 점에서 신비요 창조요 놀람의 연속이다.

푸른꿈학교 운동장가에 배, 사과, 자두, 포도, 대추 등 과일나무와 영산홍, 철쭉, 등나무 그리고 쑥을 비롯한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들이 봄을 같이 맞고 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운동장을 산책한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350보 정도 된다. 세 바퀴를 돈다. 얼추 천 보 정도 되는 셈이다.

귓전으로는 학교 현관 라운지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선생님과 학생들이 펼치는 버스킹 공연(오늘은 세월호 7주기라서 특별히 천 개의 바람을 함께 노래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하는 동안에 어제보다 자란 이파리를 보며 인사를 하고,

시들어가는 꽃잎을 보면서 가야할 때를 생각하기도 하고,

쑥쑥 자라는 쑥을 보면서 화롯불에 구워 먹던 쑥떡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또 뒷산인 금당산의 짙어가는 푸르름을 보며 학교 이름인 푸른꿈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맑은 봄 하늘을 쳐다보며 텅 빈 충만을 느끼기도 하고, 멀리 보일 듯 말듯 무등산을 바라보며 무등의 세상을 꿈꾸는 것은 덤이자 풍요와 행복이다.

산책의 철학자인 칸트에게로 생각의 나래는 이어진다.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칸트는 자신의 고향을 평생 동안 떠나지 않았다. 칸트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짜여진 일과대로 하루를 지냈다. 04:55분 일어나 홍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07시부터 09시까지 강의, 09시부터 12:45분까지 연구와 집필, 점심은 오후 1~3:30분까지 손님들과 대화를 하며 천천히 먹었다. 오후 3:30분부터는 그 유명한 산책 시간이었다.(혹은 5시부터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외는 없었다. 얼마나 정확하게 산책 시간을 맞췄던지 마을 사람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산책 시간을 어긴 적은 딱 두 번. 첫 번째는 1762년 루소가 에밀을 내놨을 때 그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서였고, 두 번째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아 산책하는 걸 잊었다고 한다. 산책 후에는 가벼운 책을 보다가 저녁밥은 자신이 직접 요리하여 네댓 시간 동안이나 즐겼다. 그의 요리는 그 시절 그 시기에 가장 알맞은 음식을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칸트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고 규칙적이었다. 그가 세기적인 철학자가 된 데는 산책이 크게 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의적인 통찰을 하게 될 가능성이 앉아 있을 때보다 걷고 있을 때 60% 가까이 증가한다고 한다. 걸을 때는 두뇌가 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 또한 방안을 걸어다니며 회의를 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나는 칸트 같은 대 철학자가 되기 위함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람이 될 생각도 없다.

다만 푸른꿈창작학교 운동장을 점심시간마다 천 걸음 정도 산책하며 나무와 풀과 산과 하늘과 바람을 보고 느끼고 만나는 가운데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풍요를 만끽할 뿐이다.

거기에 푸른꿈을 찾으려는 아이들,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 꿈을 이루어가는 아이들이 한두 명씩 운동장 산책에 나서고, 그리고 꿈을 꾸며 꿈을 이루는데 함께 동행하려는 마음과 몸짓을 가진 선생님들이 두세 분씩 운동장 산책에 나서는 모습들을 보는 것으로도 포만감에 행복할 뿐이다.

한걸음에 하늘이, 또 한걸음에 땅이, 걸음마다에 산이, 꽃이, 나무가, 풀이 그리고 내딛는 발걸음마다에 아이들이, 선생님들이 나의 눈과 귀와 머리, 가슴과 온몸을 푸른꿈으로 감싸며 엄습해온다.

참 좋다. 푸른꿈학교 천 걸음 산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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