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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아름다운 밥(食)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6

                                                                          아름다운 밥()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김삿갓(김병연(金炳淵)/김립(金笠)의 파자(破字) 이야기 한 토막이다. 김삿갓이 개성 땅의 윤동춘이란 사람의 집에 들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 청년 하나가 방문을 열며 인량차팔(人良且八)이라고 하자 윤동춘은 월월산산(月月山山)이라고 대답한다. 인량(人良)은 밥(밥 식), 차팔(且八)은 구(갖출 구)를 파자한 것이니 밥이 다 갖추어졌는데 저 손님의 밥도 함께 가져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월월(月月)은 붕(벗 붕), 산산(山山)은 출(나갈 출)을 파자한 것이니 이 친구가 나가거든 가져오라는 말이다.

그때 김삿갓이 주인에게 견자화중(犬者禾重)이라고 대꾸했다. 견자(犬者)는 저(돼지 저), 화중(禾重)은 종(씨 종)을 파자한 것이니 돼지 종자라는 무서운 욕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기겁을 한 주인은 죄송하다면서 깎듯이 머리를 숙이고 부인을 독려하여 깨끗하고 기름진 저녁상을 내왔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酒案床(주안상)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밥은 사람끼리 어질고 사람답게(아름답게) 함을 보여준다. ()은 사람 인()에 어질 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은 사람을 어질고 아름답게(사람답게) 하는 바탕이며, 밥을 먹어야 사람이 어질고 아름답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양()은 양식(良識), 양심(良心), 양서(良書), 양호(良好), 양질(良質), 양약(良藥) 등에서 보듯 어질다, 좋다, 훌륭하다, 아름답다, 착하다, 진실(眞實), 참으로 등의 뜻이다. 같은 뜻으로 어질 인()이 있다.

()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인()과 이()가 결합한 것으로 그 의미를 ()하다’, ‘사람이 둘 이상 모여 친하게 지낸다는로 풀이하고 있다. 이때 친하다어질다는 그 의미가 같다. 사람으로서 친절함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면 그것이 곧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고, 이것이 사람의 바탕(자질)에 관련된 어질다는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절하거나 사랑하는 일은 어느 개인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사람과 사람들의 사이 즉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말이기에 밥이든 어짊이든 사람들의 사회적, 인격적 관계와 관련된 말이요 사람끼리의 아름다움(사람다움)을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이야기는 저 혼자 먹으려는 사람(제 식구끼리만 먹으려는 자)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음식을 함께 먹을 때 꼴불견이 있다. 옆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 먼저 먹는 사람, 맛있는 반찬을 잽싸게 가져다가 혼자 먼저 먹는 사람이다. 같이 밥 먹기 싫은 사람이다. 김삿갓의 표현을 빌리면 돼지 종자이다. (물론 돼지가 들으면 억울하다고 항변할 일인지 모르지만)

요즘 각자도생이라거나 나 혼자만이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접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 대면 관계를 자제하는 현실이 이를 더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혼밥, 혼술보다 상(식탁)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서로 권하는 이 친절, 이 사랑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면서 방방곡곡에 있는 개성 땅에서 수많은 윤동춘을 만나게 되어있는데 그때마다 이 친구가 나가거든 밥상을 가져오라고 사람을 내친다면 이야말로 돼지종자라고 욕먹게 됨을 말해 주고 있다. 오히려 날마다 곳곳에서 만나는 김삿갓들에게 깨끗하고 기름진 저녁상을 내어놓고 마주한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의 향내가 그득할 것임을 보여주며 권하는 셈이다. 먹는 것을 사이에 두고 하나(공동체)가 될 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향기(香氣)의 향() 자는 벼 화()자와 해 일()자로 이루어져 있고, () 자에도 쌀()이 들어 있다. 하늘(, )이 지은(만든) ()에서 나는 기운이 향기(香氣)이니, 밥이 향기이고 향기의 원천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밥은 하늘로부터 온 기운(향기)이니 누구 혼자 독차지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 인심은 밥에서 나온다. 또 밥의 향기는 사람들이 마주하여 어우러질 때 극치를 이룬다. 이처럼 밥은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게 하고, 사람을 사람이게 하며 친하게, 어질게 살아가게 하는 바탕이 되어 아름다운 자치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그리하여 밥()은 인()이요, ()이며,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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